작성일 : 22-05-10 09:57
사유리 "흔치 않은 선택을 한 사람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아이를 갖는 일도 갖지 않는 일도, 낳는 일도 낳지 않는 일도 여성으로서 ‘쉬운’ 선택은 결단코 없다는 사실이다."
 글쓴이 : 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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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치 않은 선택을 한 사람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아이를 갖는 일도 갖지 않는 일도, 낳는 일도 낳지 않는 일도 여성으로서 ‘쉬운’ 선택은 결단코 없다는 사실이다. (77쪽)


-요즘엔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잖아요. 아이를 갖기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본능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기를 갖고 싶었어요. 막연히 나이가 들어도 아기는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몸이 못 따라가는 걸 몰랐던 거죠.”


-임신에서 출산까지 과정은 어땠나요. 예상과 달랐던 부분도 있었을 텐데.

“아기를 가졌을 때, 다시는 TV에 못 나갈 수도 있겠다고 각오했어요. 열 명 중 일곱 명은 싫어하고 반대할 거라 예상했어요. 친구들도 정자 기증자가 서양인이다 보니 사람들이 비호감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만 저한텐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으니까, 방송에 못 나가면 다른 일이라도 해야겠다 마음의 준비를 했죠.”


-어떤 일이요?

“하와이에서 팥빙수 가게를 차려도 되고, 일본에 가서 ‘유리유리 김밥 가게’를 차려도 되고요(웃음). 머릿속에서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렸어요. 뭐라도 하면 되니까 내 삶에 집중하자 마음먹었어요.”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요.

“엄마는 일본에서 산부인과 상담을 미리 받아두고, 오빠는 정자 기증 사이트까지 찾아봐 줬어요. 아빠한테만 나중에 임신 사실을 알렸더니 ‘죽지만 않으면 된다. 사유리가 행복하다면 상관없다’고 하셨어요. 노산이라 아이를 낳다가 제가 잘못될까 봐....”


-비판받는 게 당연하다는 말도 했더라고요.

“좋은 일을 해도 비판하는 사람은 있잖아요.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비판하고. 특히 누군가 새로운 도전을 하면 많은 사람이 두려워해요. 그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요. 그런 마음도 이해는 가요.”


-스스로는 두려움이 없었나요?


“만약 방송 활동을 못 하게 되면 저를 아껴줬던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까…. 그거 하나는 정말 미안하고 걱정이 되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가장 두려웠던 건 아기를 갖지 못하는 것이었어요. 그 두려움이 훨씬 커서 나머지는 ‘될 대로 돼라’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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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돌잡이를 하잖아요. 뭘 잡았으면 좋겠나요?

“저는 젠이 의사·변호사 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실을 잡아서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루라도 오래.”


-젠에게 띄운 편지에도 썼더군요. ‘욕을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잖아. 너랑 하루라도 더 오래 함께할 수 있다면 남들에게 욕먹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맞아요. 저도 우리 아들도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술·담배 안 하고 비타민 많이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있어요.”


-기사 댓글을 자주 확인하는 편인가요?

“사실 저는 신경을 안 쓰는 편인데 매니저가 보고 우울증에 걸렸어요. 제가 악성 댓글을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겠죠.”


-남 눈치 안 보고 살기가 어렵잖아요.


“그렇게 댓글 쓰는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으니까. 그 사람들한테 좋은 말만 들으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나요. 내 인생을 책임지는 사람은 나예요.”


-응원의 목소리도 컸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특히 아기 엄마, 아빠들이 제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해주셨죠. 게이 커플이나 혼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싱글대디한테도 저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연락이 많이 왔어요. 겁 없이 도전하는 모습만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구나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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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을 낳고 생각이 달라졌나요?

“우리 오빠가 저한테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사유리, 가족은 핏줄보다 함께한 시간이 중요해.’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젠을 키우면 키울수록 그 말을 곱씹게 돼요. 둘째도 갖고 싶어졌어요. 만약 싱글도 입양이 가능하다면 둘째는 입양해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사유리TV’를 보니 “저도 남편이 있지만 속만 썩이는데 차라리 없는 게 낫겠단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라는 댓글도 있더라고요.


“그래도 좋은 남편, 좋은 아빠라면 있는 게 낫죠. 젠이 태어나기 전에, 친한 친구도 출산해서 사진을 자주 보내줬거든요. 남편이 아이를 안은 사진, 목욕시켜 주는 사진을 보니 처음으로 부럽단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론 내가 아기를 가진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여기까지 욕심내지 말자 스스로 다독였죠.”


-혼자 육아하는 게 쉽지는 않죠?

“힘들다기보다 책임감이 커요. 제가 아프면 안 되고, 일찍 죽으면 안 되잖아요. 그럼 젠은 엄마도 아빠도 없는 아이가 돼버리니까. 내가 어떻게든 돈을 벌고,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요.”



http://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1/10/16/Q4I3BKOIXNFWFJM4F4L24HZRQ4/